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 못하는 어른의 심리

by 씬언니 2026. 5. 13.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 못하는 어른의 심리

"사랑한다"는 말은 왜 그렇게 목 안에서 막히는 걸까?

명절이 지나고 나면 꼭 이런 생각이 든다.

버스 창문에 기대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 그 말 한마디 왜 못 했지?'

밥 잘 먹었고, 건강히 지내시라는 말은 했는데, 정작 "엄마, 고마워요" 이 다섯 글자는 끝내 삼켜버린다.

이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막상 왜 그런지 설명하려면 말문이 막힌다.

감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고마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말이 안 나온다.

아니, 정확히는 말을 꺼내는 순간이 너무 어색하고, 불편하고,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보려 한다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 못하는 어른의 심리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말 못하는 어른의 심리

"우리 집에선 원래 그런 말 안 했어요"

심리학에서 '애착 유형'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릴 때 부모와 어떤 방식으로 정서적 연결을 맺었느냐가 이후 삶에서의 감정 표현 방식에 깊이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다.

한국의 많은 가정에서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가르치는 문화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밥 먹었어?"가 사랑의 언어였고, "조심해서 가"가 걱정의 표현이었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익숙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이 된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그 방식을 답습하게 된다.

감사함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걸 말로 꺼내는 경험 자체가 몸에 배지 않은 것이다.

언어는 습관이다. 쓰지 않은 근육은 쓰기 어렵다.

말하면 무너질 것 같은 느낌

말하면 무너질 것 같은 느낌
말하면 무너질 것 같은 느낌

또 다른 이유는 훨씬 내밀하다.

고마움을 말하는 순간, 그 말이 품고 있는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고마워요"라는 말은 동시에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다"는 인정이고, "제가 못 봐드린 게 많았다"는 죄책감이기도 하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내가 외면해왔던 부모님의 나이, 주름, 그리고 유한한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게 두렵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어른이 되어서 부모님 앞에서 우는 건 왠지 모르게 허락이 안 된 것 같고

감정을 꺼냈다가 수습이 안 될까봐, 아예 꺼내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감정 회피(emotional avoidance)'라고 부른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것을 유발하는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것

관계가 복잡할수록 말은 더 어려워진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게 있다. 부모와의 관계가 단순히 '따뜻함'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경우다.

고마움과 서운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라면,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게 훨씬 복잡해진다.

어릴 때 받았던 상처, 풀리지 않은 오해,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기억들

이런 것들이 고마움의 표현을 가로막는 감정적 장벽이 된다.

"감사하다고 말하면, 그게 다 괜찮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픔을 지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미운 마음만 있는 것도 아닌데, 두 감정이 엉켜 있으니 어느 쪽도 온전히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언젠가 하려고 미루다 보면

언젠가 하려고 미루다 보면
언젠가 하려고 미루다 보면

나중에 하면 되지, 라는 생각이 있다.

아직 기회는 많다.

다음에 가면, 다음 명절에, 생신 때에..

그런데 그 '다음'이 반드시 오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걸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후회는 보통 늦게 온다. 그리고 늦게 온 후회는 말을 못 했을 때보다 훨씬 무겁다.

누군가를 잃고 나서야 "그때 왜 말하지 않았을까"라고 되새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감사함을 전달하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들은 그 미완성의 감정을 오래도록 안고 살아간다.

그래도, 말해보면 어떨까요

말하는 게 어색하다면, 꼭 말이 아니어도 된다. 처음에는 문자 한 줄이어도 충분하다.

"오늘 밥 잘 먹었어요. 항상 차려주셔서 고마워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거창한 고백이 아니어도 된다. 작은 말 하나가, 그동안 쌓인 감정을 조금씩 풀어주는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말을 받은 부모님은 아마 말은 못 하더라도, 오래 기억할 것이다.

그것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우리가 말을 못 하는 것처럼, 부모님도 그 감사함 하나에 얼마나 큰 의미를 두는지 감춰두고 있다는 걸 말이다.

마치며

감사하다는 말을 못 하는 어른들은 나쁜 자식이 아니다.

다만, 감정 표현의 근육이 발달하지 않았거나, 말로 꺼냈을 때 감당해야 할 감정의 무게가 두렵거나,

관계 안의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는 것일 뿐이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그렇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하지만 가끔은, 딱 한 번만, 용기를 내보는 것도 괜찮다.

완벽한 말이 아니어도 좋다.

그 어색함 속에서도 전해지는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 부모님께 전화 한 통 해보는건 어떨까요?